바람이 불면 바람개비가 돌아가듯,
우리는 그렇게 서로에게 빠져들었다
우리들의 뜨거웠던, «검은 여름»


대학에서 조교로 일하며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드는 지현.
어느 날 대학 후배 건우에게 혼란스러운 감정을 느끼게 된다.
두 남자는 그렇게 서서히 사랑에 빠지게 되고,
어느 날 둘의 관계가 담긴 동영상이 대학 내에 퍼져 큰 파장을 일으키는데...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을 성범죄의 가해자로 내세울 수밖에 없는 현실.
인간적 좌절과 희망에 두 남자는 어떤 입장으로 맞설 것인가?

 

[ ABOUT MOVIE ]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희생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
남들과 다를 것 없는 ‘사랑’이었을 뿐

영화 <검은 여름>은 제 22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상영작으로 이원영 감독의 첫 번째 장편 연출작이다. <검은 여름>은 두 남자 간의 미묘한 감정을 시작으로,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성범죄 가해자로 나설 수밖에 없는 한 남자의 좌절감을 그려낸 퀴어 로맨스로, 오는 2019년 6월 20일 극장 개봉을 앞두고 있다.
대학 조교로 일을 하며,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드는 지현. 그는 다음 영화를 제작하기 위한 배우 오디션에서 후배 건우를 만나게 된다. 그 둘은 점차 가까워지며 서로에게 우정 이상의 감정을 느끼게 되지만, 그들의 관계가 담긴 동영상, 일명 ‘몰카’가 대학 내에 유포되며, 그 관계는 무너지기 시작한다. 이렇듯, 영화 <검은 여름>은 두 남자의 어지러운 감정과 그 사랑을 둘러싸고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육체적 그리고 정신적 폭력을 담아내고 있다. 겉으로는 개방적이고 편견에서 자유로워 보이는 대학이지만, 실상은 혐오와 편견으로 점철된 곳에서 두 남자의 사랑은 과연 지속될 수 있을까?
이원영 감독은 이러한 소수자들의 이야기에 주목한 이유에 대해 “사랑하는 딸이 세 살이 되던 해, 그제서야 자신의 성 정체성을 깨달았다는 지인이 있었다”며 운을 떼었다. “바람이 불면 바람개비가 돌아가듯 어떤 논리적 설명도 필요 없이 그 사람을 만난 순간 사랑에 빠졌다고 했다. 남자라서 사랑한 게 아니라, 사랑하고 보니 남자였던 것이다”라며 이 영화를 제작하게 된 계기를 밝혔다. 감독은 이 이야기를 들으며 진정한 사랑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으며, <검은 여름>이 바로 그 고민의 산물이였다고 전했다.
영화 <검은 여름>은 성별을 떠나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자연스러운 과정을 그리는 동시에, 여전히 우리 사회에 견고히 뿌리 내리고 있는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보여준다. 또한, 오늘 날 우리 사회에서도 크게 문제시 되고 있는 불법 촬영 문제 역시 혐오의 일환이라는 것을 꼬집고 있기도 하다. 그들은 ‘사랑’이라는 보편적인 감정 안에서 단지 성(性)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배척을 받는다. 함께 울고 웃던 동료들까지도 예외 없이 그들에게서 등을 돌리고, 너무나도 쉽게 폭력을 행사한다. 지현이 자신을 성범죄자로 내세울 수밖에 없었던 영화 속 현실이 지금 우리 현실과 크게 다를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가 생략해버린 그들의 이야기
그리고 우리가 뺏어버린 그들의 색

영화 <검은 여름>은 이원영 감독의 섬세한 연출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영화는 주인공 지현의 장례식 장면으로 시작된다. 영화의 시간적 배경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녹음이 우거지는 여름이라는 계절이지만, 화면은 곧 흑백이라도 될 것 마냥 채도가 빠져있다. 이렇듯 이원영 감독은 의도적으로 지현의 죽음을 기점으로, 그 시점에 가까워질수록 채도를 빠뜨리는 연출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지현과 건우가 그들의 감정을 확인하고 깊은 사랑을 할수록, 화면은 상대적으로 높은 채도로 구성된다. 이에 대해, 감독은 ‘검정이라는 색이 모든 것을 집어삼킨다는 느낌을 받았다’라며 제목과 더불어, 그러한 연출을 선택한 이유를 밝혔다. 주변 인물들이 알게 모르게 지현과 건우을 향해 행사한 검은 폭력들이 그들의 색을 빼앗았고, 결국에는 지현을 죽음이라는 비극적 결말에 빠뜨린 것이다.
이에 더해, 이야기를 전개하는 형식도 주목할만하다. 지현이 남기고 떠난 순서가 뒤죽박죽인 메모를 통해 진행되는 영화는 관객에게 마치 중간중간 페이지가 찢겨나간 책을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원영 감독은 이러한 방식을 취한 이유에 대해 ‘생략이라는 것을 이번 기회에 잘 활용해보고 싶다’라고 말했다. 또, ‘이 방식을 통해 사회에서 어떻게 우정이 부서지고 소수자들이 배척되는지 보여주면서, 관객들을 이야기에 동화시키기 보다는 너무 익숙해서 감각이 둔해진 삶을 낯설게 체험하도록 유도 시키고자 했다’며 말을 전했다. 감독은 관객들이 직접 지현이 남기고 간 메모들 사이 사이 생략된 이야기들을 채워나가길 바랐다며 그 이유를 밝혔다.
이와 같이 영화 <검은 여름>은 이원영 감독만의 정교한 터치와 감성으로 소수자들이 어떤 식으로 우리의 삶에서 지워지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의 이야기를 지우고, 누군가의 색을 빼앗고 있는 것은 아닐까.

 
Posted by 비몽사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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